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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관일 칼럼
‘프로’로 산다는 것

혁주! 그가 누구인지 아시는가? 아마도 많은 사람이 이름 석 자만으로는 잘 모를 것 같다. 나 역시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그를 모르는 게 아니라 기억을 못 했다.
그는 열두 살에 불과했던 1997년에 차이코프스키 청소년 국제 콩쿠르에서 2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2004년 칼 닐센 콩쿠르와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 200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등에서 입상한 바이올리니스트였으니 일찌감치 톱뉴스에 등장했을 것이다. 그랬기에 모르는 게 아니라 기억에 없다는 말이다. 이건 순전히 건망증 탓이다.

온몸을 바쳐 노력한다는 것
권혁주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보게 된 것은, 지난 10월의 어느 날 나의 ‘페친’인 서희태, MBC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배우 김명민이 연기했던 강마에의 실제 모델로 유명하다, 음악감독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고 나서다. 누구이기에 그가 세상을 떠난 것에 서 감독이 그토록 가슴 아파하고 슬퍼하는지 의아해서였다.

아~, 권혁주! 그에 관한 기사를 상세히 읽고서야 음악인들이 그토록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이유를 알았다. 세상에! 이런 천재 음악인이 그렇게 세상을 떠나다니. 그것도 불과 서른한 살의 그 젊은 나이에. 뉴스를 봐서 이미 알고 있겠지만, 연주회를 위해 부산에 머물고 있던 그는 지인과 저녁 식사를 하고 해운대구 중동의 한 호텔로 이동하던 중 택시 안에서 쓰러졌다. 한마디로 과로에 의한 돌연사다. 10월 12일의 일이다.

그의 스토리를 하나씩 검색해보면서 필자는 많은 생각을 했다. 프로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나름의 세계를 구축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그는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러시아로 유학을 떠났고, ‘러시아 국보급’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지만, 그는 대중 앞에서 연주하기 위해 온몸을 던져 피나는 훈련을 거듭하는 사람이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바이올린 연주에 몰입하며 혼신의 힘을 다했으면 건초염, 건막염, 활막염, 테니스 엘보우, 퇴행성관절염 등을 함께 앓았고, 진통제로 살았다고 한다(일부는 나중에 수술로 해결했지만). 그가 얼마나 처절하게 예술가의 삶에 천착했는지를 엿보게 된다.

그는 IQ가 무려 184에 이르는 천재이면서도 “최선을 다해 집중하면 누구나 뛰어난 실력을 갖출 수 있다”고 겸손했으며, 자신을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할 만큼 고독한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그런 그가 그 젊음과 예술성을 활짝 더 꽃 피우기 전에 세상을 떠나다니! 서희태 감독은 물론이요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까닭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혼신의 노력으로 최선을 다했는가!
그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죽음’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있을 것이다. 그런 세계적인 천재도 자신의 꿈을 실현하려고 온몸을 다 바쳐 그토록 노력했는데,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돌아보자는 것이다.
말로는 “치열한 경쟁” 운운하며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고 하면서 혹시라도 건성으로 세상을 사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또한 ‘최선’이라는 것도 과연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최선인지, 아니면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으로서의 최선은 아닌지도 살펴봐야 하겠다.
권혁주 씨를 보면서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해야 나름의 경지를 개척할 수 있는지 새삼 옷깃을 여미게 된다. 그의 명복을 진심으로 빌면서 말이다.

조 관 일
한국샌더스은퇴학교 교장·창의경제연구소 소장

 

 


 

 

편집국 기자 admin@fntimes.com 기사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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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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