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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잡학사전
캐디의 어원과 비운의 메리 여왕
글|김세영 기자

프에서 캐디의 역할은 중요하다. 단순히 클럽을 들어주는 일뿐만 아니라 홀까지 남은 거리나 퍼트 라인까지 봐준다. 그래서 아마추어 골퍼 중에는 모든 과정을 캐디에게 의존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골프장에 소속된 ‘하우스 캐디’도 이럴진대 전문 캐디 또는 프로 캐디의 세계는 훨씬 더 고도화돼 있다. 캐디는 코스 내에서 선수가 믿고 의지하는 유일한 동반자다. 그들은 ‘보스’에게 코스에 대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승부의 결정적인 순간 선수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상담사 역할까지 해야 한다.

스타선수와 함께하는 전문 스타 캐디 시대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전문 캐디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스타 선수 못지않게 억대 수입을 올리는 스타 캐디도 탄생하고 있는 것. 국내에서 프로 캐디의 지평을 넓힌 건 과거 김효주의 캐디를 맡았던 서정우 씨다. 현재 그는 최혜진의 백을 메고 있다. 외국의 경우에는 과거 타이거 우즈의 캐디였던 스티브 윌리엄스가 유명했다. 그는 우즈의 메이저 14승 중 13승을 합작했다. 웬만한 프로 선수들보다 많은 수입을 올렸고, 고국인 뉴질랜드에서는 스타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전문 캐디는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직업이기도 하다. 선수들이 슬럼프 등을 겪을 때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캐디를 해고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지난해 9년 동안 22승을 합작했던 캐디 J.P. 피츠제럴드를 해고했고, 필 미컬슨(미국)은 무려 25년이나 함께했던 캐디와 헤어졌다.

 

처음으로 캐디를 대동했던 ‘최초의 여성골퍼’ 메리 여왕
그렇다면 캐디라는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골프의 기원과 마찬가지로 몇 가지 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스코틀랜드 여왕이자 프랑스 왕비였던 메리 스튜어트(Mary Stuart, 1542~1587년)와 관련이 있다. 어린 시절 프랑스 궁정에서 자랐던 메리 여왕은 라운드를 할 때 프랑스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을 경호원 겸 캐디로 대동했다. 생도들은 프랑스 말로 카데(Cadet)라고 불렸는데, 이 말이 훗날 캐디(Caddy)가 됐다는 것이다.

공식 문헌에 등장한 ‘최초의 여성 골퍼’인 메리 골프의 확산에도 지대한 역할을 했다. 그녀의 라운드 모습을 지켜보던 프랑스 사람들이 골프를 즐기기 시작했고, 이후 골프는 벨기에를 비롯해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골프는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과정에도 한몫했다.

1567년 두 번째 남편이었던 단리 경이 살해를 당했는데, 그의 장례식 날에도 메리 여왕은 라운드를 한 것. 소위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행동을 했으니 메리 여왕을 향한 민심이 좋았을 리 없다. 더구나 메리 여왕은 남편의 죽음에 관여됐다는 의심을 받았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살해 의심범인 보스웰 경과 세 번째 결혼을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메리 여왕은 성에 감금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이후 19년간 유폐 생활을 하던 메리 여왕은 반역죄로 몰려 1587년 2월 공개 처형으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한편, 메리 여왕이 남편의 장례식 날 라운드를 한 곳은 스코틀랜드의 머셀버러 올드 코스로 추정된다. 기네스북에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으로 이름을 올린 곳이다. 머셀버러 올드 코스는 한 때 디 오픈 개최지로도 사용됐다. 9홀 규모의 머셀버러 올드 코스는 ‘머셀버러 링크스’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남아 있고, 근처에 18홀짜리 로열 머셀버러 골프클럽이 1922년 새롭게 들어섰다.

 

 
 

편집국 기자 admin@fntimes.com 기사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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