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culture > 주요기사 > 2018.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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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선의 육아수업
설마, 부모 스스로 양치기 소년이 되지는 않겠지요?
 

네덜란드에도 여느 유럽 국가와 비슷하게 트램(Tram)이 다닌다. 자잘한 돌바닥에 레일이 깔려 있고, 그 위로 빨간색 트램, 검은색 트램, 오렌지색 트램이 수시로 지나다닌다. 수도 암스테르담과 달리 행정수도 헤이그는 국제적인 법 도시, 국제적인 행정 도시의 명성이 무색하지 않은 격조 있는 분위기를 뽐낸다. 이런 도시의 공기를 가르며 조용히 지나다니는 트램의 모습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운치를 살려준다.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 한잔 마시며 수시로 다니는 트램의 모습만 바라봐도 그 어느 유럽도시와는 다른 독특한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정직이 습관된 네덜란드 사람들

트램은 2개 혹은 3개의 몸체가 연결돼 있고 꽤 길다. 당연히 승객이 타고 내리는 문도 여러 개다. 그러니 사람이 좀 많을 때는 물론 트램이 한산할 때에도 트램 운전사는 승객들의 모습을 일일이 살필 수가 없다. 트램에 탈 때는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내릴 때는 문 옆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열린다. 각각의 문 옆에는 작은 스캐너가 있어서 승객이 타면서 교통카드를 한번 스캔 하고 내릴 때도 한 번 스캔을 하면 요금이 결제된다. 네덜란드의 교통카드는 일반 신용카드가 아니라 ‘OV chip’ 카드라고 하는 선불카드다. 일정 금액을 충전해놓고 쓸 때마다 요금이 빠져나간다. 신기한 건, 그 카드에 비록 돈이 충분하지 않거나 돈이 전혀 없더라도 한동안은 마이너스로 잔액이 계속 내려가며 결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처 바빠서 교통카드를 며칠 동안 충전하지 못하더라도 마이너스로 요금을 내면서 트램을 이용하는 데 문제없다.

트램의 운전기사는 승객이 교통카드 결제를 제대로 하는지에 도통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방인인 필자의 눈으로 봤을 때 마음만 먹으면 슬쩍 트램에 무임승차해 올라탈 수도 있고, 주변 시선이 부담스러우면 대충 스캔하는 척 하고 넘어가도 아무도 모를 환경이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 트램에 무임승차를 한다는 얘기는 들어보지도 못했고, 그것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적도 없다. 그들의 트램 운영시스템은 상호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누가 확인하지 않아도,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도 자신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다. 정직한 삶이다.

최근 우리나라에는 ‘노쇼(no show)’ 문제가 회자된 적이 있었다. 우리가 레스토랑에 예약을 하면 레스토랑은 인원수에 맞는 식재료를 준비한다. 정성껏 재료를 준비하고 테이블을 세팅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손님은 아무 연락도 없이 안 나타나고, 전화를 걸어 봐도 답이 없다면 금전적 손해는 고스란히 레스토랑의 몫이다. 신뢰가 무너져버린 순간, 금전적 손실도 손실이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한 마음의 상처가 큰 아픔으로 남게 된다. 일면식은 없지만 믿고 기다렸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이라고 하면 너무 과할까?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 혹은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했을 경우를 대비한 방편으로 예약을 할 때 신용카드 정보를 미리 받아놓는 레스토랑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이미 미국이나 프랑스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예약 시 신용카드 정보를 받는 곳이 다수다.

하지만 네덜란드에서는 아무리 고급 레스토랑이더라도 예약과 동시에 신용카드 정보를 받는 일이 없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예약 손님의 이름이나 전화번호조차 묻지 않고 인원수만을 확인하기도 한다. 그리고 예약 시간에 가보면 어김없이 인원수에 맞게 테이블은 정갈하게 세팅되어 있다. ‘예약석’이라는 자그마한 팻말과 함께.


부모가 먼저 지키는 약속의 중요성

다른 사람이 혹은 사회가 나를 조건 없이 신뢰한다면 그 신뢰는 더욱 잘 지켜져야 한다. 어겼을 때 대가를 치러야 하는 약속이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지키게 되지만, 온전히 신뢰에 기반한 약속이라면 더 철저하고 충실하게 임해야 한다. 좀 거창하게 의미를 부여하자면 그것이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이자 행해야 할 의무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에게 약속의 중요성을 한두 번쯤 주지시켰을 것이다. “거짓말 하는 것은 정말 나빠.” “양심을 지켜야 하는 거란다.” 행여 자녀가 부모 눈속임을 하거나 부모에게 거짓말한 것이 들통이라도 나면 호되게 야단친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녀가 사회적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을 크게 갖지 않는 부모가 적지 않다. 가령,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다고 쓰레기를 슬쩍 버리는 것, 출입금지라고 쓰인 곳에 들어가는 것, 사진 찍지 말라는 사인에도 불구하고 사진 찍는 행위, 공연 중 떠들거나 영화볼 때 앞자리를 발로 차는 일 등이다. 이런 일들은 모두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사회적 약속이다.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지키기로 합의한 사회적 약속이다. 물론 사회적 약속들을 어긴다 해도 당장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두 번 약속을 어겼다고 해서 내가 혹은 내 자녀가 물리적인 피해를 보는 일도 일반적으로는 없다. 그러니 사회적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부모 스스로는 과연 자녀와의 약속을 얼마나 잘 지키는가도 돌이켜 보자. “꼭 데려가 줄게”, “꼭 사줄게”, “꼭 해줄게” 등등 삶 속에서 부모들은 자녀와 은근히 많은 약속을 한다. 문제는 그렇게 던진 말이 지켜야 할 약속이라고 의식하지 않는 데 있다. 여차하면 그냥 넘어가 버리거나, 다른 일이 생기면 그냥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버리고 만다. 심지어 그런 약속을 자녀에게 했는지조차 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자녀에게 무언가를 하겠다고 말했다면 그건 이미 약속이다. 꼭 지켜야 한다. 만약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면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자녀로부터 괜찮다는 답을 듣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누군가 중요한 사람과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는가를 생각해보고, 적어도 그에 준하는 성실함을 자녀에게도 보일 필요가 있다.

자녀와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자녀도 부모가 자신과의 약속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약속을 어기면 화가 난다. 속이 상하고 실망도 한다. 하지만 자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부모에게 “왜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시나요?”라고 강하게 항의할 상황도 못 된다. 결국,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끼게 될 뿐이다. 조금 비약하자면, 이런 상황을 자주 경험함으로써 이 사회는 힘 있는 사람은 힘 없는 사람과의 약속을 쉽게 생각한다고 여기게 될 수 있다. 권력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더라도 무사할 수 있다고 인식할 수 있다.

자존감 있는 아이로 키우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정직함’

네덜란드에서 2013년에 실시한 조사가 있다. 부모들이 자녀를 양육하며 가장 큰 가치를 두는 점이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이었다. 1위를 차지한 항목은 다름 아닌 ‘정직함’이었다. 그 다음은 ‘타인에 대한 배려’, ‘공정함’, ‘책임감’ 순서였다. 정직함을 강조하는 그들의 자녀양육은 누가 보지 않는 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유효하다. 약속은 어김없이 지키고, 늘 떳떳하고 양심에 거리낌 없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네덜란드 부모들의 자녀교육 방법이다.

요즘같이 자녀를 하나만 낳아 키우는 가정이 많아질수록 ‘약속지킴’을 강조하는 자녀교육이 더 중요하다.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성장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남에게 양보할 기회가 줄고 늘 받기만 하는 데 익숙해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녀가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을 다 하는 교육에 소홀해질 가능성이 크다. 내 자녀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줄 알고, 지인과의 약속도 잘 지키며, 무엇보다 사회가 정한 약속까지도 철저하게 지키며 살아가는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부모가 어릴 때부터 교육해야 한다. 물론 이런 교육 방식이 자녀의 자존감을 향상시키는 데도 큰 효과가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황 유 선
•언론학 박사
•<네덜란드 행복육아> 저자
•전 중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전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
•전 KBS 아나운서

 

 


편집국 기자 admin@fntimes.com 기사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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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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